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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교지구에서는 삼국시대 횡혈식 석실분 11기가 발굴되었다. 분당구 판교동에서 발굴된 9기는 백제의 석실분이며 시기는 4세기 후반∼5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천정양식은 변형궁륭식을 벽석은 동장수법을 사용하여 한성백제시기의 묘제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백현동에서 발굴된 석실은 고구려의 석실분으로 판단된다. 한성백제 석실분에서는 금,은,금동으로 만든 머리장신구, 팔찌, 반지 등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머리장신구는 중국·일본과 같은 형태로 삼국시대의 동아시아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고구려 석실분은 고구려 무덤 천장 축조 방식인 모줄임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고구려의 남하흔적으로 볼 수 있다. 한성백제와 고구려 묘역을 통해 백제 근초고왕 시기전후의 활발했던 대외 교류의 흔적을 볼 수 있으며 이후 고구려의 남하와 백제의 웅진(공주)천도로 이어지는 한성백제시기의 흥망 증거로 볼 수 있다.

    1. 백제 석실분 9기
      백제 석실분 중 1,2,3,4,7,8,9호분은 이전 복원을 5, 6호는 현지 보존이 결정되었고 고구려 석실분 1, 2호분은 이전 복원이 결정되었다. 석실분 유구는 이전하여 유적공원을 조성함으로써 판교지구 내에서 발굴 조사된 유적에 대하여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복원하여 전시 및 교육 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차후의 연구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결정되었다. 백제고분은 장축 방향이 등고선과 직교하고, 현실 평면이 장방형을 띤 점, 연도가 우측에 붙은 점, 할석을 눕혀쌓기 하여 벽석을 올린 점, 궁륭형 천장을 가진 점이 공통적이다. 현실의 규모는 가장 작은 3호분이 길이 280㎝, 너비 170㎝ 정도이고 가장 큰 6호분이 길이 318㎝, 너비 180㎝, 9호분이 길이 310㎝에 너비 240㎝ 정도로서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5,6,9호분을 제외한 나머지 고분은 현실 네 벽의 평면형이 바깥으로 배가 부른 이른바 동장식이며 3호분의 후벽 최하단석은 보통의 할석이 아니라 한장의 커다란 장대석을 이용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연기 송원리의 방형 석실분과 함께 판교동의 장방형 석실분은 석실 벽이 밖으로 배가 부른 형태는 서북한지방 전실묘와 통하는 수법에서 그 관계가 주목된다. 현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는데 예외적으로 9호분은 바닥과 벽석에 백토를 발랐던 것으로 보인다. 모든 고분에서 출토되는 관정의 존재를 볼 때 목관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개 2인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7호분의 경우 목관의 크기는 길이 214~257㎝, 너비 57~67㎝ 정도로 추정된다. 9호분을 제외한 모든 고분에서 부장된 토기가 발견되었는데 단경호와 직구호 등 호류가 주종을 이루며 고배와 완 등이 소수 포함되어 있다. 부장품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장신구류이다. 1,3 ,6,7,9호분에서 은제 팔찌·은제 가랑 비녀·금동제 가랑비녀 등이 출토되었다. 총 9기의 고분 중 5기에서 장신구가 출토된 점은 매우 주목되는데, 한성 백제의 횡혈식 석실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현상으로 피장자 집단의 성격을 추정할 때 주목할 점이다.
      백제석실분 9기 설명
      유물사진 연번 유구명 잔존규모(cm)
      길이x너비x깊이
      출토유물
      1 판교박물관

      1호 백제 석실분
      410×190×150 토기 5,

      장신구 1,

      관정 49
      유물사진 연번 유구명 잔존규모(cm)
      길이x너비x깊이
      출토유물
      2 판교박물관

      2호 백제 석실분
      330×210×110 토기 1,

      관정 28
      유물사진 연번 유구명 잔존규모(cm)
      길이x너비x깊이
      출토유물
      3 판교박물관

      3호 백제 석실분
      450×170×148 토기 7,

      장신구 11,

      관정 54
      유물사진 연번 유구명 잔존규모(cm)
      길이x너비x깊이
      출토유물
      4 판교박물관

      4호 백제 석실분
      452×166×100 토기 3,

      관정 43
      유물사진 연번 유구명 잔존규모(cm)
      길이x너비x깊이
      출토유물
      5 판교박물관

      5호 백제 석실분

      (현지보존)
      452×166×100 토기 3,

      관정 43
      유물사진 연번 유구명 잔존규모(cm)
      길이x너비x깊이
      출토유물
      6 판교박물관

      6호 백제 석실분

      (현지보존)
      429×365×195 토기 4,

      장신구 2,

      관정 20
      유물사진 연번 유구명 잔존규모(cm)
      길이x너비x깊이
      출토유물
      7 판교박물관

      7호 백제 석실분
      579×220×160 토기 2,

      은제팔찌 2,

      관정 32
      유물사진 연번 유구명 잔존규모(cm)
      길이x너비x깊이
      출토유물
      8 판교박물관

      8호 백제 석실분
      490×170×190 토기 2,

      관정 10
      유물사진 연번 유구명 잔존규모(cm)
      길이x너비x깊이
      출토유물
      9 판교박물관

      9호 백제 석실분
      530×240×90 장신구 1,

      관정 18
    2. 고구려 석실분 2기
      백제석실분 동편 백현동에 고구려의 횡혈식 석실분 2기가 발굴조사되었다. 구릉 남사면에서는 2기의 고구려 횡혈식 석실분이 발견되었다. 그 중 1호분은 쌍실묘로서 장벽을 공유하고 있다. 벽석은 커다란 할석을 이용하여 최하단석은 눕혀쌓고 그 위는 세워쌓는 방법으로 올렸으며 천장은 모퉁이의 모를 줄이는 말각천장이다. 벽석의 빈틈은 작은 자갈과 회로 채워 넣었다. 서편의 1-1호 현실은 길이 170㎝, 너비 125㎝, 잔존 높이 110㎝의 장방형으로서 모두 우편재 연도이다. 1-1호 현실의 연도에는 천장으로 사용된 커다란 장대석 2매가 남아 있으며 입구는 길이 100㎝의 판석을 문비석처럼 사용하여 폐쇄한 것이 확인되었다. 1-1호 현실의 바닥은 생토면 위에 두께 10㎝ 정도의 적갈색 점토를 깔아서 정지하였으며 일부 불 다짐한 흔적도 확인되었다. 한편 2호분은 길이 185㎝, 너비 140㎝로서 장방형 평면을 띠고 있으며 잔존높이는 120㎝이다. 역시 우편재 연도이다. 반면 북벽 서벽부, 서벽 전체, 남벽 서반부에 걸쳐 할석으로 만든 관대를 설치한 점이 1호분과 다르다. 쌍실묘와 말각천장의 존재는 고구려고분과의 관련성을 뒷받침해주며, 특히 말각조정의 천장구조는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고구려고분군과 비슷하며 2호분에서 보이는 좌편재 관대는 화성시 청계지구의 고구려 석실분과 공통적이다.
      고구려석실분 9기 설명
      유물사진 연번 유구명 잔존규모(cm)
      길이x너비x깊이
      출토유물
      10-1 판교박물관1-1호

      고구려 석실분(좌)
      170×125×110 -
      유물사진 연번 유구명 잔존규모(cm)
      길이x너비x깊이
      출토유물
      10-2 판교박물관1-2호

      고구려 석실분(우)
      190×150×110 -
      유물사진 연번 유구명 잔존규모(cm)
      길이x너비x깊이
      출토유물
      11 판교박물관2호

      고구려 석실분
      185×140×120 -
  • 판교공원

    판교근린공원 내 유적 5기

    판교동의 백제 석실분과 함께 취사용 부뚜막이 발견된 삼평동 백제 집터는 한성백제의 세력권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성남판교 한성백제 유적은 도성으로 비정되는 서울 강동지역에서 시작하여 탄천과 그 지류를 따라 다수의 유적들이 용인, 화성까지 발굴되고 있어 수도권지역의 백제 유적의 실체가 확인되고 있다.
    이밖에도 판교근린공원에 이전복원된 통일신라~조선시대의 각종 가마에서 생산된 도기·기와·숯 등을 통해 과거 판교 지역의 경제활동과 생산기술을 살필 수 있다.

    1. 백제 부뚜막
      • 도면도면
      • 백제 집터백제 집터
      • 부뚜막부뚜막
      • 현재모습현재모습
      이 유적은 삼평동(현 삼평고등학교 일대) 백제 집터에서 발견된 부뚜막으로 집터의 서쪽 모서리에서 발견되었다. 부뚜막은 바닥에 진흙을 띠처럼 돌려 만들었는데 내부에서 속 깊은 바리모양 토기(深鉢形土器) 등이 발견되었다. 집터는 가로 237㎝, 세로 296㎝, 깊이 39㎝로 내부에서 속 깊은 바리모양 토기와 두드려 만든 삿무늬나 문살무늬를 새긴 토기(格子打捺文土器) 등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백제문화가 서울 잠실에서 탄천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밝히는 자료로 큰 의미가 있으며 당시 성남의 주거와 식생활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2. 숯가마
      • 탄요전경탄요전경
      • 불구멍불구멍
      • 아궁이입구아궁이입구
      • 현재 모습현재 모습
      사송동 숯가마(현 봇들마을 1단지 일대)는 천장부분은 없어졌지만 연소부, 소성실, 배연부의 평면 상태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남아 있는 크기는 길이 355㎝ 너비 230㎝ 깊이 43㎝이다. 시대는 통일신라~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위에서 본 모양은 역삼각형으로 반지하식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연소부는 암반을 파고 만들었으며 입구 양쪽에 돌을 놓아 벽을 보강하였다. 소성실은 암반을 위에서 아래로 굴착하여 평평하게 만들었으며 벽은 숯을 구울 때 발생한 열로 단단하게 굳어져 있다. 또 배연부는 원형 굴뚝과 소성실과 굴뚝을 연결하는 통로로 구성되어 있다. 숯가마 내부에서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도촌동 숯가마와 함께 과거 성남지역 사람들의 경제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3. 기와가마
      • 기와가마 전경기와가마 전경
      • 출토 암키와출토 암키와
      • 현재 모습현재 모습
      운중동 기와가마(현 산운마을 5, 8단지 일대)는 자연 경사면을 이용하여 소성실을 만든 반지하식 굴가마(登窯)로 입구 하나에 3개의 소성실이 달린 매우 특이한 형태이다. 발견 당시 천장부와 아궁이는 무너져 남아 있지 않았다. 남아 있는 크기는 길이 720㎝ 너비 640㎝ 깊이 94㎝이다. 시대는 조선시대로 비정된다. 소성실 벽면에 보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장기간 사용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발견된 기와는 모두 암키와인데 ‘大’자 형 명문기와, 바둑판무늬, 생선뼈무늬, 복합무늬 등의 기와가 발견되었다. 세 개의 소성실에서 발견되는 유물로 볼 때 각각은 시기를 달리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하나의 가마에서 생산할 수 있는 기와 수가 1,000장 가량으로 대형 건물의 보수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4. 도기가마
      • 도기가마 전경도기가마 전경
      • 도기가마 출토 유물도기가마 출토 유물
      • 소성실 입구소성실 입구
      • 현재 모습현재 모습
      사송동 도기가마(현 봇들마을 1단지 일대)는 가마의 천장 일부와 연소실, 소성실, 배연부 등이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위에서 본 형태가 가늘고 긴 지하식 굴가마(登窯)이다. 남아 있는 크기는 길이 830㎝ 너비 160㎝ 깊이 125㎝이다. 연소실은 암반을 파고 만들어 돌과 진흙으로 벽을 보강하였다. 소성실은 암반을 굴 모양으로 굴착하고 바닥, 벽, 천장에 진흙을 발랐다. 바닥 경사도는 24°로 경사가 급하고 벽체는 점토를 두껍게 발라 보강하였으며 열로 인하여 단단하게 굳어 있다. 벽체의 보강·수리 흔적이 많은 것으로 보아 장기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대부분 소성실 바닥에서 출토되었는데 성남지역의 도기(陶器) 생산기술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유적이다.
    5. 담장 건물지
      • 건물지 토층건물지 토층
      • 건물지 전경건물지 전경
      • 현재 모습현재 모습
      판교동 담장 건물지(현 판교원마을 1단지 일대)는 평면은 방형으로 정상으로부터 완경사를 이루는 능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에 향해 있다. 남아 있는 크기는 길이 380㎝ 너비 370㎝ 깊이 70㎝이다. 서쪽이 개방되어 있는 ‘ㄷ’자 형으로 기단부는 납작한 깬 돌로 쌓아 조성하고 그 위에 20㎝ 안쪽으로 벽을 둘렀다. 벽은 15~30㎝ 크기의 깬 돌에 흙을 채워 가로쌓기 하였다.개방된 서쪽에는 양쪽 모서리에 초석을 놓고 그 사이에 1단의 하방석(下枋石)을 두었는데 하방석과 건물의 중심축을 맞추어 평평하게 다듬은 석재를 놓았다. 이는 제물을 놓는 상돌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는 다량의 기와편, 철제동물상 및 고배, 청자잔, 접시 등 자기류가 출토되었다. 유구의 형태와 출토된 유물로 보아 이 건물지는 제사와 관련된 곳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규모로 보아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비는 당집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로 보아 고려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6. 탄요
      • 탄요(24지점 2호) 출토상태탄요(24지점 2호) 출토상태
      이 숯가마는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현 이지더원 아파트 자리)에서 발견된 것이다. 2호 탄요의 규모는 길이 355cm, 너비 230cm, 대깊이 43cm이다. 내부 함몰토는 적갈색 소토덩어리가 흑갈색사질토와 섞여 있으며 그 위를 명갈색 사질토가 덮고 있다. 발견당시 천장은 없어졌지만 연소부, 소성실, 배연부의 평면 상태는 비교적 잘 남아있는 상태였다. 숯가마를 위에서 본 모양은 역삼각형으로, 구조는 반지하식이다. 가마의 구조를 살펴보면, 먼저 연소부는 암반을 파고 만들었으며 입구 양쪽에 40㎝×30㎝×30㎝ 크기의 돌을 놓아 벽을 보강하였다. 소성실은 암반을 위에서 아래로 굴착하여 평평하게 만들었다. 벽은 기반암벽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숯을 구울 때 발생한 열로 인하여 단단하게 경화되어 있다. 배연부는 원형의 굴뚝과 소성실과 굴뚝을 연결하는 통로로 구성되어 있으며, 숯가마 내부에서는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성남 도촌지구에서도 이와 구조가 같은 숯가마가 발견되었는데, 이 유적은 도촌지구의 숯가마와 함께 성남지역에 살았던 옛날 사람들의 경제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그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아 이곳으로 이전하여 복원하였다.
  • 낙성대공원

    낙생대공원 내 유적 5기

    삼평동과 사송동의 돌덧널무덤(石槨墓)과 판교동의 돌방무덤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이르는 유적이다. 특히 통일신라시기 유적들은 중원구 도촌동 유적과 광주 남한산성유적과 연계해서 추론해 보면 삼국통일시기 한반도에서 성남 및 인접지역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백현동에서는 고려시대의 널무덤(土壙墓)도 다수 발견되었는데 고려백자, 청자, 동전, 청동수저 등 껴묻거리로 출토되었다.

    1. 12구역 ‘나’지점 1호 석실묘
      • 돌방무덤돌방무덤
      • 출토유물출토유물
      • 현재 모습현재 모습
      백현동(현 지역난방공사 일대) 통일신라시대 1호 돌방무덤(石室墓)은 해발 약 80m의 평탄면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기존 집터를 파괴하고 만들어져 있다. 평면은 모줄임장방형으로 풍화암반층을 굴착한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이다. 돌방의 규모는 길이 380㎝ 너비 225㎝ 깊이 80㎝이며 벽석은 최고 5단까지 남아있다. 무덤의 벽은 판석형 할석으로 가로·세로쌓기를 혼용하여 축조하였다. 무덤의 입구는 동쪽에 치우친 남단 벽에 설치되었고 소형 할석을 바닥에 깔아 주검받침(屍床)으로 하였는데 중앙부에서 허리띠장식(銙帶)이 한 점 출토 되었고 동쪽 벽체 아래에서 반파된 연질토기 한 점이 출토되었다.
    2. 12구역 ‘나’지점 2호 석실묘
      • 돌방무덤돌방무덤
      • 출토유물출토유물
      • 현재 모습현재 모습
      백현동(현 지역난방공사 일대) 통일신라시대 2호 돌방무덤(石室墓)은 해발 약 74m의 평탄면에 위치하였고 기존 구덩이 유구 일부를 파괴하고 만들어져 있다. 평면은 모줄임장방형에 풍화암반층을 굴착한 형태로 돌방의 규모는 길이 350㎝ 너비 225㎝ 깊이 80㎝이고 벽석은 최고 3단까지 남아있다. 장방형 할석을 눕혀서 북쪽 면부터 양쪽의 긴 면, 남쪽의 짧은 면의 순서로 세로쌓기 한 것으로 보인다. 동쪽을 먼저 그리고 서쪽으로 2차례에 걸쳐 주검받침(屍床)을 만들었는데 이 중 두 번째 주검받침 중앙에서 금속 허리띠 장식 4점이 발견되었고, 껴묻거리로 대부병(臺附甁) 1점이 출토되었다.
    3. 21지점 2호 석곽묘
      • 도면도면
      • 돌덧널무덤돌덧널무덤
      • 현재 모습현재 모습
      삼평동(현 봇들마을 4,6단지 일대)에서 발굴된 이 유구는 성남에서 최초로 발견된 앞트기식돌덧널무덤(橫口式石槨墓)이다. 크기는 길이 253㎝ 너비 130㎝ 깊이 80㎝이다. 시대는 통일신라~고려시대로 추정된다.돌덧널(石槨)은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하여 북벽 6단, 서벽 7단, 동벽 6단, 남벽 4단으로 되어있고 무덤 내의 주검받침(屍床)은 바닥 전체에 15~25㎝ 크기의 납작한 돌로 만들었다. 북벽과 동·서벽을 먼저 쌓고 남쪽 방향에서 시신을 안쪽으로 밀어 넣는 방식으로 안치한 다음 남벽을 막은 것으로 추정된다.
    4. 24지점 3호 석곽묘
      • 도면도면
      • 돌덧널무덤돌덧널무덤
      • 출토유물출토유물
      • 현재 모습현재 모습
      사송동(현 봇들마을 2단지 일대) 돌덧널무덤은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으로 덮개돌은 남아 있지 않다. 크기는 길이 184㎝ 너비 155㎝ 깊이 93㎝이다. 시대는 통일신라~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서벽, 북벽, 동벽, 남벽 순으로 쌓았고 첫째 단은 큰 돌을 가로쌓기로 하다가 2단부터 작은 돌을 사용하였다. 작은 돌을 사용하여 벽석을 고정하거나 줄을 맞추고 모래질 찰흙으로 벽석을 메웠다. 돌덧널(石槨) 안의 주검받침(屍床)에서는 청동 허리띠 장식(鉸具) 조각이 발견되었다.
    5. 12구역 방형구획묘
      • 토광묘 전경토광묘 전경
      • 출토 인골출토 인골
      • 현재 모습현재 모습
      백현동(현 지역난방공사 일대) 방형구획묘는 유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중앙의 토광묘, 토광묘를 둘러싼 방형 담장(曲墻)시설, 담장 동쪽 석렬유구가 그것이다. 토광묘는 길이 270㎝ 너비 140㎝ 깊이 240㎝로 남쪽 벽 내부에서 감실(龕室)이 확인되었다. 감실 내에는 청동수저 1벌, 바닥에서 인골 1구, 인골 허리부분에서 족집게와 귀이개가 출토되었다. 담장시설은 중앙 묘광을 중심으로 동서 760㎝, 남북 560㎝의 장방형으로 폭 80㎝의 3단 정도가 확인된다. 담장시설의 앞쪽에는 작은 규모의 석축시설이 위치하는데 중앙부 위쪽에 상돌을 놓은 흔적과 향로석이 발견되었다.담장시설과 함께 묘역을 형성하고 있는 석렬유구는 남쪽과 북쪽이 담장시설과 맞닿아 외곽에 면을 맞추어 1단으로 쌓아 만들었다. 시대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