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 유물검색
  • 판교의 역사
  • 브로슈어
  • 교육활동지

판교의 역사

  • 홈 아이콘
  • 자료실
  • 판교의 역사

판교의 문화유적 사진

판교의 문화유적

대규모의 택지개발 혹은 도로건설, 댐건설 등 일정 면적 이상의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반드시 문화재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판교도 이와 마찬가지로 대규모의 개발이이루어지기 전에 문화재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먼저 지표조사를 통해 유적의 유무를 확인하고, 더불어 민속조사를 실시하여 옛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다. 이후 땅속에 묻힌 문화재에 대해 정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공사를 진행한다. 이 중에서도 후대에 꼭 남겨야 할 가치가 있는 문화재는 그 자리에 두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복원하여 전시하기도 한다. 판교도 이러한 단계를 거쳐 그 결과 후기 구석기시대의사람들로 부터 판교에서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집자리와 야외노지가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청동기시대의 집자리와 그 안에서 민무늬토기, 돌화살촉, 방추자, 갈돌 등도 출토되었다. 원삼국시대의 呂자형, 방형주거지가 조사된 바 있으며, 삼국시대의 유적으로 백제의 돌방무덤과 고구려의 돌방무덤이 11기 발견되었고 같은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백제의 집자리 34동도 조사되었다.

일신라시대의 돌곽, 돌방무덤, 토기 가마도 조사되었으며,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도 발견되었다. 작은 암자로 보여 지는 이 건물에서 금 동소탑의 상부와 비로자나불상 1점, 청동지장보살상 2점등이 출토되었다. 조선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대형의 건물지는 낙생고등학교 주변에서 조사 되었으며 고려와 조선시대의 무덤들도 다수 조사되었으며 그 안에서 도자기류와 청동숟가락 젓가락, 합, 철제 가위등 다양한 껴묻거리도 함께 출토 되었다. 판교신도시 내에서 이렇듯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를 거쳐 삼국시대 고려, 조선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살던 집자리, 무덤, 가마, 건물, 유물이 발굴조사 되었다.

현재의 판교

현재의 판교 사진

‘판교(板橋)’라는 이름은 과거 낙생면 소재지인 이곳 ‘너더리’ 마을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너더리는 ‘널다리’가 변한 말로 보고 있으며,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옮기면서 ‘널 판(板)’ 자와 ‘다리 교(橋)’ 자를 취하여 지금의 ‘판교’라는 이름이 생겼다. 곧 옛날 이 마을의 운중천 위에 판자로 다리를 놓고 건너다니면서 생긴 이름에서 유래되고 있다. 지금은 판교동과 삼평동, 운중동, 백현동 일대를 합하여 판교신도시로 만들었다. 신도시내에 주거지역, 상업지역, 그리고 IT · BT 등의 첨단 연구시설단지인 테크노벨리를 조성하였다. 서쪽에 높은 청계산과 백운산이 위치하며, 청계산 자락의 하나인 금토산이 이어지고 있다. 판교 안에는 운중천과 금토천, 탄천 등의 소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합류하여 한강으로 흐르고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한가운데 남북으로 관통하며, 판교나들목이 있다. 또한 도시고속화도로와 역사들이 새로 들어설 예정에 있어 교통의 요지라 볼 수 있다.